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창 50장 )

1. 서막: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야곱의 생애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언약의 계보를 마무리하는 장이다. 그는 에집트 고센 땅에서 17년을 더 살고(창세기 47장 28절) 임종을 앞두며 요셉에게 마지막 부탁을 남긴다. “나를 에집트에 묻지 말고 조상의 묘지 가나안의 막펠라 굴에 장사해 달라”는 유언이다. 이 요청은 단순한 매장 장소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려는 믿음의 결단이다. 야곱에게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약속으로의 귀향’이었다.

요셉은 아버지의 임종 앞에 엎드려 얼굴에 입맞추며 울었다(창세기 50장 1절). 그 울음에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아버지를 통해 자신에게 전해진 신앙의 유산을 향한 경외가 담겨 있다. 요셉은 아버지를 위해 방부 처리를 명한다(50장 2-3절). 40일간의 방부 절차와 70일간 이어진 국가적 애도는 야곱이 단지 한 가문의 족장이 아니라 에집트 사회에서도 존경받은 인물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는 세속의 땅에 살았으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 있었다.


2. 가나안으로의 여정과 장례식

애도 기간이 끝나자 요셉은 바로에게 아버지를 가나안 땅에 묻을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한다(50장 4-6절). 파라오는 흔쾌히 허락했고 요셉은 형제들, 신하들, 기마병, 마차와 함께 장엄한 장례 행렬을 이루었다(50장 7-9절). 이는 한 가족의 애도가 아니라 ‘언약 백성의 행진’이었다. 에집트의 권세자들이 함께한 행렬은 하나님께서 세상 권세 위에서도 자신의 뜻을 성취하심을 보여준다.

행렬은 요단 건너편 아톳 타작마당에 이르러 7일 동안 애도했다(50장 10-11절). 그 애도는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증언하는 공동체적 행위였다. 결국 야곱은 마므레 앞 막펠라 굴에 묻힌다(50장 12-13절). 이곳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레아가 함께 잠든 조상의 묘지였다. 야곱의 장례는 혈육의 귀환을 넘어 언약의 뿌리로 돌아가는 행위였다.


3. 화해와 용서의 장면

야곱이 묻히자 형제들은 두려워했다. “요셉이 혹시 우리에게 복수하지 않을까”(50장 15절). 그들은 요셉에게 “아버지가 형들의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고 전하며 스스로 죄를 고백했다(50장 16-17절). 그들은 요셉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50장 18절)라 했다.

요셉은 복수 대신 하나님의 관점을 선택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50장 19절). 그리고 말한다. “너희는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리게 하셨다”(50장 20절). 이는 창세기의 신학적 정점이다. 인간의 악의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구원의 도구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요셉은 “내가 너희와 너희 자녀를 돌보겠다”(50장 21절)며 형제들을 위로한다. 진정한 용서는 권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4. 요셉의 생애 마무리와 신앙의 유산

요셉은 형제들과 화해한 후 에집트에서 평안히 살며 110세에 생을 마쳤다(50장 22절). 그는 에브라임의 셋째 대손과 마낫세의 손자들의 자손을 보았다(50장 23절). 그 세대의 생명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확인했다.

임종의 순간에도 그는 언약을 굳게 붙든다.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돌보시고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것이다”(50장 24절). 이어 “내 뼈를 가나안으로 가져가라”(50장 25절)고 유언한다. 요셉의 마지막 말은 신앙의 유언이다. 그 뼈는 수백 년 후 출애굽 때 모세에 의해 가나안으로 옮겨진다(출애굽기 13장 19절). 그의 믿음은 세대를 넘어 약속의 성취로 이어진다.


5. 신앙적 의미와 묵상

  1. 섭리와 인간의 악의 교차
    요셉의 고백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50장 20절)는 성경 전체를 꿰뚫는 구속의 원리다. 인간의 악한 의도조차 하나님의 손에 의해 선으로 바뀌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간다. 로마서 8장 28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은 바로 이 원리를 계승한다.
  2. 약속의 유산
    야곱의 장례와 요셉의 유언은 모두 가나안으로 향한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셉의 “내 뼈를 옮겨 달라”는 말은 단순한 매장 요청이 아니라 ‘약속의 신앙을 다음 세대에 전하라’는 명령이다.
  3. 용서와 화해의 신앙
    요셉은 권력의 자리에서 복수를 택하지 않았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는 말은 심판의 주체가 하나님 한 분임을 인정하는 겸손의 고백이다. 그의 용서는 형제의 죄를 덮는 은혜였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믿음의 행위였다.
  4. 죽음과 전환의 상징
    창세기는 생명으로 시작하여(1장)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마지막 장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약속으로 이어지는 전환’이다. 야곱과 요셉의 장례는 인생의 종말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의 이동이며 죽음이 언약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문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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