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장미가 우리 울타리에 피었습니다

 
 

 

그 장미가 우리 울타리에 피었습니다

설움 중 집 없는 설움이 제일 크다는 말씀을 참 많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 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더 가슴에 박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차린 신혼살림은 단칸방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은 수많은 이사와 함께였습니다.

주민등록 초본에 찍힌 주소 개수를 보고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옮겨 다녔구나’ 싶었습니다.

결혼 5년 만에 어렵게 집을 마련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다시 작은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즈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고, 우리 형편을 걱정하셨을 겁니다.

형편 따라 이사하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물건 하나 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건 다음 이사 땐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요.

청약에 단 한 번도 당첨되지 못했지만, 전세를 끼고 산 집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내 집'이라는 감격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또 그 집을 정리하고 작은 집으로 옮겼고, 어머니와도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오해한 채 떠나신 것 같아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의 집은 재개발을 기대하며 산 작은 집이었습니다.
다행히 일이 잘 진행되어 아파트를 받게 되었고, 지금까지 6년째 살고 있습니다.

작지만 우리 집, 처음으로 오래 머무는 공간.
이제는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올해 봄, 장미가 유난히 붉고 탐스럽게 피었습니다.
해마다 피던 장미였지만, 올해는 더 감격스러웠습니다.

 

 

 

 

 

 

 

 

 

 

 

 

 


예전엔 남의 집 담벼락 꽃이 부러웠는데
이제는 그 장미가 우리 담장에 피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꿈꿔왔던 집이에요? 너무 소박한 거 아니에요?”
저는 말합니다.
“저는 지금 이 집이 참 좋습니다.”
집을 마련하려면 온 마음과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돈만이 아닌 간절함과 정착하려는 마음이 함께여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집은 수많은 이사 끝에 머무르게 된 자리이고,
편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저녁이면 창가에 앉아 서산으로 지는 해를 바라봅니다.
그 빛이 우리 울타리 위로 스며들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전에는 이런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하루하루를 버티느라 아름다움을 놓치며 살았죠.
지금은 다릅니다.
노을빛과 장미가 어우러지는 이 집에서 하루의 끝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큰 감사이고, 작지만 단단한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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