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나눈 대화 피카소와 마티스의 우정

 

 

붓으로 나눈 대화: 피카소와 마티스의 우정

 

서로 너무 달랐다. 한 사람은 격정적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피카소와 마티스. 그들은 성격도 화풍도 인생관도 달랐지만 서로를 가장 오래 이해하고 가장 깊이 의식했던 동시대의 예술가였다.

우리는 흔히 둘을 예술적 라이벌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경쟁을 넘어서 질투와 존경이 엉킨 우정의 결이 보인다. 이야기는 그리 화려하지도 감미롭지도 않지만 묵직하고 아름답다.

 

첫 만남은 낯설고 불편했다

두 사람은 학연도 없었고 공통의 지인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공통의 관심사인 예술을 통해 결국 만나게 되었다. 피카소와 마티스를 소개한 이는 당시 파리의 예술계에서 활동하던 미국인 수집가 겔트루드 스타인이었다. 그녀는 둘의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차이가 서로에게 자극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마티스의 거실에서 처음으로 대면한 그날, 두 사람은 곧 서로의 존재를 뚜렷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1906년 파리. 마티스의 거실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반기기보다는 경계했다. 마티스는 이미 야수파의 선두주자였고 피카소는 새로운 화풍을 모색하던 도전자였다. 마티스는 피카소를 너무 자신만만한 젊은이라고 느꼈고 피카소는 마티스를 조심스럽게 무겁다고 여겼다. 그 첫인상은 싸늘했지만 그 만남이 이후 평생 동안 이어질 관계의 시작이 되었다.

 

서로를 꺾기 위한 그림들이 쏟아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철저히 의식했다. 마티스가 대담한 색으로 자유를 외치면 피카소는 형태를 부수며 대답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티스의 '춤'이 발표되자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로 반격했고 둘 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바꾼 작품이 되었다. 두 사람의 경쟁은 미술사 전체를 움직였다. 그러나 그 싸움은 적의를 담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그림을 가장 정직하게 봐주었고 가장 가혹하게도 비판해주었다. 누구보다 신뢰했고 서로의 말에 귀 기울였다.

 

조용한 안부가 오가던 전쟁의 시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피카소는 점령된 파리에 있었고 마티스는 니스에 머물고 있었다. 직접 연락은 어려웠지만 서로가 살아 있는지 서로의 예술이 꺼지지 않았는지 그 소식을 끊임없이 궁금해했다. 피카소는 지인들에게 묻곤 했다. "마티스는 무사한가." 마티스 역시 피카소의 안부를 걱정하며 자신의 신작을 건넸다.

그 시절 둘의 안부는 편지로 전해졌다. 길고 격한 말 없이 짧은 문장 하나로 서로를 안심시켰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들은 예술을 통해 계속 이어졌다.

 

나이를 먹으며 서서히 부드러워진 우정

노년이 되어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우정을 표현했다. 마티스는 색을 더 단순하게 쓰기 시작했고 피카소는 그 색의 힘을 다시 배웠다. 피카소는 마티스의 색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처럼 색을 다룰 수 있었다면 아마 다른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말년에 마티스는 피카소의 작업을 칭찬했고 피카소는 마티스의 시도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들은 끝내 서로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통해 지금의 자리에 이를 수 있었다.

 

먼저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1954년 마티스가 세상을 떠났다. 피카소는 깊은 침묵에 빠졌다. 한동안 붓을 들지 못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내 그림을 보여줄 사람이 없다'고

마티스는 피카소에게 그림을 보여주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 말은 슬픔이라기보다 한 시대가 끝났다는 자각에 가까웠다. 이후 피카소는 마티스를 기리는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그림마다 마티스가 쓰던 색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선과 파란 여백이 있었다. 그림을 마치 그에게 다시 보내는 듯했다.

 

서로가 서로를 만든 관계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은 때때로 작은 에피소드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어느 날 마티스는 자신이 오랜 시간 공들인 작품 한 점을 피카소에게 보여주었다. 피카소는 그것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좋은 그림이야. 하지만 여기에 하나의 파란 선이 더해졌다면, 완벽해졌을 거야' 마티스는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피카소를 찾아갔다. 그림에는 그 파란 선이 더해져 있었다. 피카소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마티스는 처음으로 그 칭찬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또 한 번은 마티스가 건강 문제로 입원해 있을 때였다. 피카소는 직접 그린 꽃다발 그림을 들고 병실을 찾았다. 진짜 꽃 대신 그림을 그려온 이유를 묻자 피카소는 말했다. "네게는 진짜 꽃보다 색이 더 어울려." 마티스는 피식 웃었고 그 그림은 병상 머리맡에 오래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전통적인 의미의 따뜻한 관계는 아니었다. 질투했고 비판했고 때로는 서로를 불편해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은 결국 서로를 예술가로서 밀어올리는 힘이 되었다. 피카소는 마티스가 있었기에 자신이 더 멀리 갈 수 있었다고 말했고 마티스 역시 피카소의 존재가 자기를 다시 보게 만든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형제였다. 예술로 대화했고 그림으로 서로를 이해했다.

우정이란 결국 닮은 이와의 평화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이와 나누는 긴 대화인지도 모른다. 피카소와 마티스는 서로를 견딘 사람들이다. 그리고 끝까지 서로를 잊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 출생: 1869년 12월 31일
  • 사망: 1954년 11월 3일
  • 마티스는 말년에 니스 근처의 바랑스(Vence)에서 작업하며, 종이 오리기(collage) 기법 등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다가 84세에 세상을 떠났다.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 출생: 1881년 10월 25일
  • 사망: 1973년 4월 8일
  • 피카소는 프랑스 남부 무쟁(Mougins)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며 91세까지 살았고 죽기 직전까지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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