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에겐 죽음 어떤 이에게는 기회
하나님은 왜 그렇게 다르게 대하실까.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헌금을 하다 죽은 부부. 아나니아와 삽비라. 거짓말 한 번에 죽음이라니. 또 한 장면. 언약궤가 흔들릴 때 손을 댄 사람. 웃사. 그의 손길은 단지 반사적이었지만 곧바로 죽음을 맞는다. 이 장면들은 우리 마음에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까지 하실까. 그에 비해 다윗은 어떠한가. 바세바와 간음하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살았다. 아니 단순히 살았다는 수준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았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인데 왜 이렇게 다른 대응을 하시는 걸까.
하나님의 거룩을 대하는 태도
먼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자. 이들은 자발적으로 재산을 드리는 공동체 속에서 일부만 바치고는 전부인 양 행세했다. 겉으로는 헌신자였지만 속으로는 자기 이익을 챙기며 사람과 하나님을 속이려 했다. 초대교회가 세워지는 시점. 하나님은 이 공동체가 진리 위에 서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그들의 위선은 단순한 개인의 거짓이 아니라 성령을 속이는 일로 간주되었다. 베드로는 말한다.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것이다.
웃사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는 언약궤가 흔들리자 그것을 붙잡는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충성심 있고 순간의 용기를 낸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명확히 하신 기준은 언약궤는 제사장들이 어깨에 멜 때만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웃사는 궤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거룩을 가볍게 여긴 셈이 되었다. 그때는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하나님은 그 순간에도 경외심 없이 다가오는 것을 단호히 막으신다.
두 경우 모두 공통된 주제가 있다. 하나님의 거룩을 대하는 태도. 거룩은 하나님의 본질이며 그것이 훼손될 때 하나님은 단호하게 반응하신다. 그것은 사랑의 부재가 아니라 거룩함이라는 질서의 수호다.
다윗 죄인이지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그렇다면 다윗은 왜 달랐을까. 다윗이 바세바와의 간음과 살인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즉각 심판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선지자 나단을 통해 그의 죄를 지적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시편 51편을 보면 다윗의 내면이 얼마나 찢겨졌는지 느껴진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해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왕이었고 변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나단 앞에서 바로 고백한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죄는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았고 감추려 들지 않았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다. 하나님은 그의 죄를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않으셨다. 아이가 죽었고 집안에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과의 관계를 끝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를 계속해서 사용하셨고 다윗의 삶을 통해 회개의 본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공평하신가 그 공평의 의미는
하나님이 공평하시다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대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거룩함 앞에서 그 기준을 깬 사람에게는 단호하시고 무너진 죄인이라도 참된 회개로 나아오는 자에겐 용서와 회복을 주신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다. 기계적인 형평성보다 더 깊고 더 진실한 분별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웃사는 겉으로는 의로운 행동을 하는 듯했지만 그 안에 있는 동기와 태도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않았다. 다윗은 정직하지 않은 행동을 했지만 죄를 직면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다. 겉이 아닌 속을 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지금 나는 아나니아처럼 겉으로만 믿음을 드러내고 있는가. 웃사처럼 내 뜻대로 하나님의 일을 돕고 있는가. 아니면 다윗처럼 실수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나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었을 때 어디로 가는가가 중요하다.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오늘 그 자체가 은혜다. 그리고 우리도 다윗처럼 그 은혜 안에서 다시 쓰임받을 수 있다. 중요한 건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이다.
그분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그래서 어떤 이에겐 죽음이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회복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가 그 기회의 시간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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