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언약궤 그 두려움과 기쁨

 

언약궤 다시 돌아오다 – 두려움과 기쁨 사이

1. 무너진 우상 무너진 자존심

블레셋은 전쟁에서 이긴 전리품으로 언약궤를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안치했다.

그러나 이튿날 다곤 신상이 언약궤 앞에 엎드려 있었다.

그들은 다시 신상을 세웠지만 다음 날은 머리와 손까지 부서진 채 문턱에 나뒹굴었다.

고대 사회에서 신상의 파괴는 그 신의 권위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타 신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 유일하신 주권자임을 보여준다.

이후 아스돗뿐 아니라 가드와 에그론으로 옮겨진 언약궤 주변 도시마다 종기와 죽음의 공포가 퍼졌다.

하나님의 임재는 축복일 수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결국 블레셋 제사장들조차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하며 돌려보내기로 결정한다.

2. 되돌아온 언약궤 경외와 기쁨 사이

블레셋은 금 종기와 금 쥐 모양의 속건제를 헌물로 만들어 암소 두 마리에게 수레를 끌게 했다.

어미 소는 송아지를 뒤로 남겨두고 본능을 거슬러 벳세메스로 곧장 향했다.

하나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진이었다.

벳세메스 사람들은 언약궤가 돌아온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언약궤 안을 들여다보는 불경을 저질렀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70명이 죽었다.

기쁨은 있었지만 거룩함에 대한 경외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나님은 사랑과 친밀함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거룩함으로 다가가야 할 분이다.

3. 다윗의 첫 실패 규례를 무시한 운반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기기 위해 수레를 새로 만들고 찬양대와 함께 화려한 행렬을 준비했다.

그러나 수레가 흔들릴 때 언약궤를 붙들던 웃사가 즉시 죽임을 당한다.

겉보기에는 열심과 정성이 가득한 순간이었지만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한 결과였다.

다윗은 당황했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뜻밖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다시 배운다.

웃사의 행동은 인간적인 충성심이었지만 하나님은 거룩함을 먼저 요구하신다.

4. 오벧에돔의 복 거룩함 안에 머문 자

다윗은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 잠시 머물게 했다.

그리고 그 가정에 하나님의 복이 넘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님의 임재는 준비된 자에게는 복이 되고 거룩함 안에 사는 자에게는 생명의 근원이 된다.

두 번째 시도에서 다윗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언약궤를 옮긴다.

이번에는 레위인들이 율법대로 어깨에 메고 여섯 걸음마다 제사를 드리며 경외심으로 행진했다.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이 운반 방식에 녹아 있었다.

5. 다윗의 춤 미갈의 냉소 누가 진짜 경건한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다윗은 기쁨을 참지 못해 왕의 체면을 벗고 온 힘을 다해 춤을 추었다.

그는 백성보다 더 낮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선택했다.

하나님이 중심에 있을 때 인간의 체면과 자존심은 내려놓을 수 있다.

경건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이다.

그러나 미갈은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비웃었다.

왕의 체통을 버렸다는 이유로 다윗을 비난한 그녀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도 감동하지 못했다.

결국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이 살았다.

핵심 메시지

하나님의 임재는 친밀하지만 거룩한 두려움을 요구한다.

언약궤는 단순한 성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며 그 거룩함 앞에 경외함이 먼저다.

신앙은 열심보다 경외가 먼저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말씀을 무시하면 결국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다.

참된 기쁨은 자기를 낮추는 데서 온다.

다윗처럼 체면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기쁨으로 나아갈 때 그것이 진짜 경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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